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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4길 15

by blueshirt 2020. 7. 26.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4길 15 : 양옥 저택

광화문 근처를 지나다 뜬금 없는 위치에서 위 양옥 저택을 봤다. 사진은 낮에 다시 가서 찍은 것이지만 위 저택을 처음 보게된 것은 밤이었다. 오후 9시 즈음 불 하나 조차 켜있지 않은 폐가였다. 빌딩으로 가득찬 서울 도심의 한복판, 노른자 땅이라고 할 만한 위치에 주택이 있다는 것이 의아했지만, 무엇보다도 오래된 폐가라는 점이 사람을 압도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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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집의 흔적

IP TV가 대세가 되어 스카이라이프 위성 안테나도 잘 보이지 않는 오늘날 야기 안테나가 달려있었고, 굴뚝이 있었으며, 담장에는 도둑이 넘지 못하게 철조망이 있었다. 요즘도 담장을 지닌 집은 철조망을 꾸리긴 하지만, 이렇게나 날이 서있고 무엇보다 군대에서 쓰던 것만 같은 둥근 철조망은 무척 오래된 집에서나 보던 것이었다. 도대체 이 집은 누구의 집인 걸까?

 

 

주인은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폐가는 아니다. 물론 아무도 살지는 않지만, 현재 이 집은 재단법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 소유로 잡혀 있다. 요즘은 전산화가 잘 되어있어서 주소만 알면 쉽게 그 집의 이력을 알 수 있다.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4길 15'에 대한 등기사항전부증명서를 보면 기록상 최초 소유자는 김진억씨였고, 정성애/이순희씨 공동소유를 거쳐 현 재단법인천주교서울대교구유지재단까지 이른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은 전 주인인 이순희씨로부터 2004년에 집을 기부받은 것이었다. 이로서 이 집에 대한 의문(누구 집일까?)는 해결되었지만, 조금 더 생각해보면 재밌는 질문들을 생각해볼 수 있다. 과연 이 집을 소유했던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과연 첫 주인이 김진억씨 였을까? 

과연 이 집을 소유했던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까?

 서울시 종로구 율곡로 4길 15 (수송동)은 비싼 자리다. 2004년 기준 30억원 상당의 저택이었다는데, 서울의 집값이 올랐다는 걸 제외하고 보더라도 물가상승률만 보면 오늘날(19년도 기준) 41억원 가치의 저택이다. 오늘날 교보생명, KT, 대림 등 여러 기업 빌딩들과 각종 정부청사 한 가운데 위치해 있고 지하철역(안국역) 코 앞에 위치해 있어 비싼 것도 있지만,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강점기 조선 총독부의 앞 자리 였고, 그 이전에는 조선의 임금이 살던 경복궁의 앞 자리였다. 옛부터 비싼 자리였던 것이다. 

이순희씨

천주교 재단에 기부된 만큼 가톨릭 신문 기사에서 많은 것을 알 수 있었다. 2004년 기준 이순희 할머니가 73세였단 것부터, 2004년 기준 이 집이 지은 지 65년 되었다는 것까지 알 수 있었다. 즉 이 집은 1939년에 지어졌으며 이순희 할머니는 (73세가 만 나이가 아니라면) 1932년생이셨던 것이다. 이순희 할머니가 이 집에 살게 된 것은 등기상으로 1956년으로 나온다. 25세에 이 집을 구매했던 것인데, 이순희 할머니는 어떤 일을 하셨던걸까?

개인 서사에 대한 이야기는 아무래도 유명인이 아닌 이상 역사서에 남지 않아 여러 자료를 짜맞춰볼 수 밖에 없는데, 다행히도 한양대학교 동아시아건축연구실 게시글 댓글에서 이 분을 직접 만난 분이 계셨다. 그 분은 화가이자 수필가셨다. 화가에 초점을 맞춰서 검색을 해보면 작품 하나를 찾을 수 있는데, 바로 이순희 작가님의 '자수화조화 刺繡花鳥畵' 이다.

자수화조화 刺繡花鳥畵

1940년대 작품이자 숙명여자전문학교 졸업작품으로 나온다. 이 작품의 작가가 과연 이 집의 이순희 할머니인지 확신은 없지만, 시간대와 학교의 위치, 그리고 일제강점기때 전문학교까지 학업을 해나갈 수 있는 재력을 생각해볼 때 같은 인물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학업 연령을 생각했을 때 1932년생이신 이순희 할머니가 8살에 입학해 초등(6년)/중등(3년)/고등(3년)을 보내면 1952년 전문학교 진학이어야 하지않나 싶지만, 당시 일제강점기 조선인에 대한 교육 정책을 보면 그보다 빨리 전문학교에 입학하여 40년대 졸업도 가능해보인다. 당시(1940년대) 조선인이 전문학교입학까지는 크게 3가지로 보인다. (위키피디아 참고)

  1. 보통학교(4년) + 고등여자보통학교(4년) + 전문학교검정시험 = 8년
    전문학교 검정시험을 통과하면 전문학교 입학 자격이 주어진다
  2. 보통학교(4년) + 고등여자보통학교(4년) + 일본인을 위한 중학교 5학년으로 편입하여 2년 수료 = 10년
    조선인 중학교인 고등보통학교 졸업은 일본인 중학교 4학년 졸업으로 취급되어 전문학교/대학에 입학하기 위해서는 일본인 중학교에 5학년으로 편입해야했다고 한다.
  3. 보통학교(4년) + 고등보통학교(4년) + 경성제국대학 예과 2년 수료 = 10년

만 6세부터 보통학교에 입학할 수 있다고 하니 7살에 입학했다고 가정하면 1938년 - 1941년 : 보통학교 / 1942년 - 1945년 : 고등여자보통학교를 다녔을테다. 1945년 광복을 맞이했으니, 일본인 중학교 편입은 없었을 것이며, 그대로 진학했다면 1946년에 숙명여자전문학교에 입학했을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이는 광복 직후 우리나라 교육 정책이 어떠했는지 좀 더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성애씨

성이 다르고 이순희씨와 지분을 절반씩 가진 것으로 보아 부부이지 않을까 싶은데, 이분에 관한 자료는 잘 찾지 못하였다

김진억씨

김진억씨는 광산업을 하시던 분이었다. 한양대학교 동아시아건축역사 연구실 게시글에서 이순희 할머니 이전 소유자가 광산업자였다고 했고, 등기상으로 김진억씨가 이순희 할머니 이전 소유주(1954년 - 1956년)이니 이분은 광산업자였다.

재밌는 사실은 김진억씨가 1954년부터 소유주라는 사실이다. 아까의 가톨릭신문에서 보면 이 집은 1939년에 지어졌다. 기록상 최초 소유자가 1954년부터 시작하는 것이면, 1939년부터 1954년까지는 누구 소유 였을까?

첫 주인은 누구일까?

첫 주인은 조선인 안과의사 고영목(高永穆)씨이다. 등기부 기록에는 나와있지 않지만, 고영목씨가 첫 주인이자 이 집을 지은 사람이다. 이순희 할머니 말씀으로는 본래 광산업자 이전 안과의사 고영목씨 집이라 하였고,  국사편찬위원회 - 한국근현대인물자료 를 살펴보면, 고영목씨는 1898년생으로 이 집이 처음으로 등기신고가 이루어진 1931년에는 33세였다. 그는 일본 구마모토 의과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당대의 엘리트였고, 오늘날 대한의사협회 전신인 조선의사협회 창립 멤버 중 한 명이었다. 충분히 그가 이 집을 지은 사람이라고 생각해볼 수 있다. 여담으로 이 분에 대한 연구자료를 인터넷 서핑하다 찾을 수 있었다. 8페이지 - 58번 연구이다. 

좀 더 여담으로, 조선의사협회 창립 멤버 설명 글을 읽어보면, 서무간사 고영목(高永穆)(고영순씨 동생) 이라고 적혀있다. 즉 당시에는 고영순씨가 고영목씨 못지 않게 유명한 사람임을 알 수 있는데, 이를 찾아보면 고영순씨는 1893년생으로 구한말 오사카제국대학 국비 유학을 다녀온 내과 의사였으며, 당대 조선 3대 내과 의사 중 한명으로 소문이 나있는 사람이었다. 경성제국대학의 역대 조선인 교수 4명 중 1명이기도 하다. 1928년 경성제국대학 의과부 조교수로 임명되었었지만 이틀만에 사표를 쓰고 1929년에 종로구 정동에 내과를 냈다고 한다.

다시 집

어쨌든 기록에 나와있지 않은 것을 포함해, 이 집은 1939년에 완공되어 조선의사협회 창립멤버 안과의사 고영목씨가 살다가 광산업자 김진억씨가 살고, 일제 강점기에 전문학교까지 졸업하여 화가 및 수필가를 겸한 이순희씨를 거쳐 오늘날 재단법인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지재단까지 이르게 되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뜬금없는 위치에 아무도 살지 않는 집이 있다는 것이 의아해 이 집에 대해 조사를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각자의 삶에는 서사가 있고, 멀리 보면 집은 여러 사람이 거쳐가는 곳이다. 그러니 집이라는 공간에는 한 사람의 일대기를 넘어서는 이야기가 있다. 뜬금없게 시작한 인터넷 서핑이지만, 조사를 해보면서 이런 이야기의 일부들이 내가 아는 역사적 사실과 맞닿게 되는 순간 무척 재밌었다. 정말 호기심으로 찾기 시작한 근래 몇 안되는 경험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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